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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사업할 땐 상대방도 이윤 남아야" 甲乙의 윈윈 배워

홍보팀

날짜 2015-09-16 13:3 조회수 1,730

[CEO가 말하는 내 인생의 ○○○] 에넥스 박유재 회장의 '멘토'

 

 

-종로 한일관 아들 박사장

甲乙 절묘하게 이익 남기는 지점비즈니스의 기본을 가르쳐 줘

 

- 와코 니시다 회장

대기업이 부엌가구 시장 진출했을 때 '오솔길에선 지프차가 세단 이긴다…' 내 등 두드리며 용기 북돋아줘

 

-부처의 '自利利他'

남을 이롭게하는 게 날 이롭게하는 것대리점·고객 위하다 보면 회사도 번창

 

 

 

내일모레면 광복 70주년이라고 하니 내가 벌써 80년 넘는 세월을 살아 왔음을 새삼 깨닫는다. 12세 되던 해에 광복을 맞아 전쟁과 가난, 정치적 격변, 경제 위기 등 수많은 고비를 넘어 이제 겨우 한 사람의 기업인으로 이름 석 자를 남길 수 있게 됐다. 세월이 지나 그 비결이 무엇이었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절대 내가 잘난 탓이 아니었다. 내게는 인생의 시기마다 멘토가 5명 있었다.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살아있는 지혜와 인생 지침서 같은 분들이었다.

 

◇삶의 지혜 알려준 멘토들

 

태어나서 중학교 시절까지는 할아버지가 내 멘토였다. 할아버지는 학교·사회생활에서 유념해야 할 네 가지 덕목을 항상 강조하셨다. 첫째는 선한 이와 악한 이가 모두 나의 스승이며, 둘째는 사람을 무조건 믿거나 무조건 불신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셋째는 무리한 빚보증을 서지 말라, 넷째는 우선 자신을 닦아 가정을 돌볼 능력이 있어야 국가와 사회에 봉사도 할 수 있다는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란 말씀이었다.

 

 

박유재 에넥스 회장은어린 시절 할아버지께서 들려주신수신제가 치국평천하란 말이 내가 멘토로서 가장 강조하는 마음가짐이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시절은 같은 반 동창생이었지만 나보다 나이는 네 살이나 많았던 정위석 형이 멘토 역할을 했다. 그는 자기 소신과 주관이 뚜렷했다. 한번은 길을 걸으면서도 책을 놓지 않던 그에게 "괜히 공부하는 척하는 것 같아 어색하지 않으냐"고 했다가 "남에게 지장 주지 않고 내 할 일 내가 하는데 왜 남의 눈치를 보아야 하느냐, 소신껏 자기 일을 하면 된다"는 대답을 듣고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는 깨달음을 얻은 순간이었다.

 

그는 또 매사에 빈틈이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 항상 호주머니를 확인하고 주변을 철저하게 살피는가 하면, 큰돈을 지닐 때면 몸에 반창고로 붙이고 위에 옷을 덧입어 분실의 여지를 아예 없앴다. 그로부터 사전에 철저히 준비하고 문제를 예방하는 생활 습관도 배웠다.

 

서울 종로의 유명 음식점 한일관의 아들 박영근 사장은 내 비즈니스 멘토였다. 나이 스물아홉에 무역회사를 연 나는 그가 운영하는 위생도기 판매점에 납품을 하고 있었는데, 그는 항상 "사업을 할 땐 상대방도 이윤이 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갑과 을이 절묘하게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지점을 찾는 천부적 재능이 있었다. 비즈니스의 기본인 윈-(win-win) 관계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준 것이다.

 

또 한일관이 성공한 이면에는 운영자인 자신의 모친이 직접 시장에 나가 신선한 채소와 고기를 구입하고, 쌀은 규모 있는 도매상에 미리 천 가마 값을 줘 좋은 쌀을 일년 내내 안정적으로 공급받아 밥맛을 일정하게 유지해온 비결이 있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모든 성공의 이면에는 철저한 사전 준비와 진지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 조언이었다.

 

◇용기와 기술 전수해준 니시다 회장

 

일본 와코(和光)사의 니시다 야스마루(西田泰丸) 회장은 내 장년기의 멘토이자, 은인이다. 그의 조언은 지금도 내 사업 역정에서 이정표가 되고 있다. 1970년대 중반 대기업이었던 국제상사가 '거북표 싱크'라는 브랜드로 우리가 영위하던 부엌 가구 시장에 진출했다. 나는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졌다. 삶의 의지를 잃고 번민했다.

 

니시다 회장은 그런 내 등을 두드리며 "중소기업은 지프차, 대기업이 세단이라면 부엌 가구는 오솔길이지 고속도로가 아니다"라며 "고속도로에선 지프차가 세단을 따라잡지 못하지만 오솔길에서는 세단이 지프차를 이길 수 없다"고 용기를 주었다. 또 나에게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라"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많으면 왜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 것인지 해답을 얻을 수 있다"는 현안을 주기도 했다.

 

나는 그 말 한마디에 가족과 직원, 대리점 사장들과 친구 등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의 만남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 과정에서 주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이 있다는 인간관계의 값진 교훈을 얻었고, 내 삶의 보람을 일자리 창출과 국가 사회에 공헌하는 데서 찾을 수 있었다.

 

80이 넘는 지금도 내게는 멘토가 있다. 누이동생의 권유로 15년 전 한 선원(禪院)을 찾기 시작하면서 부처를 스승으로 모시게 된 것이다.

 

84000개 대장경에 적힌 수많은 부처의 가르침 중에,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자리이타(自利利他),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 곧 자신을 이롭게 한다는 뜻이다. 젊은 시절 박영근 사장으로부터 배운 윈-윈 관계가 한 발 더 나아간 셈이다. 대리점과 고객의 이익을 위해 기업 활동을 하다 보면, 절로 회사도 번창할 수밖에 없다.

 

둘째는 견아중생 환희발심(見我衆生 歡喜發心)이라고 해서,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기쁘고 즐거운 마음이 솟도록 하자'는 뜻이다. 의식하는 마음 없이 타인에게 베푸는 행위가 그 방법 중에 하나일 텐데, 내게는 인생의 소중한 교훈을 아낌없이 나눠주고 이음새 없는 싱크 상판의 기술도 전수해준 니시다 회장을 절로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나도 이제는 한 가족의 큰 어른이 되어 스스로 멘토가 되지 않으면 안 될 처지다. 내가 멘토로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전해주신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의 마음가짐이다. 내 손자와 손녀들이 그 뜻을 알고, 우리 3대가 국가 사회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는 집안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수 있었으면 한다.